박종철 고문치사사건, 4·13호헌조치, 시위 도중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에 6월 29일 민정당 대선후보 노태우는 민주화를 위한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하고 직선제 개헌을 마침내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졌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하자,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일부 정치군인들이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극비리에 실권을 장악했다. 1961년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했던 군인들과 대비하여 이들을 신군부라 불렀다. 18년간 지속됐던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면서 1980년 초 ‘서울의 봄’이 시작됐다. 대다수 국민은 빨리 헌법을 민주적으로 바꿔 민주주의를 앞당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발맞춰 대학가를 중심으로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